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쿠라바 카즈시 (문단 편집) ==== 그레이시 헌팅 ==== 당시 그레이시 가문은 이종격투기계의 절대강자였다. [[발리 투도]] 석권에 이어 UFC 토너먼트 1회, 2회, 4회를 [[호이스 그레이시]]가 연달아 재패하며 자타공인의 최강자의 위치에 올라 당시 그레이시 가문을 이길 자는 없었다. 하지만 사쿠라바는 이 그레이시 가문에 도전장을 던졌다. 첫 상대는 1999년 11월 21일 PRIDE 8에서 만난 [[호일러 그레이시]]였다. 호일러는 경량급 선수였지만 [[아부다비 컴뱃 레슬링|ADCC]]에서 수차례 수상 경력이 있는 강자였다. 그러나 사쿠라바는 체격의 우위를 이용해 호일러를 몰아붙였고 기무라 록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호일러는 팔이 완전히 꺾인 상황에서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심판이 TKO패를 선언해 경기를 끝냈다.[* 이에 대해 그레이시 쪽에서 "호일러가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는데도 심판이 부당하게 패배를 선언했다."라는 항의가 있었다. 하지만 심판은 선수를 보호할 의무가 있어 죽거나 부상을 입어야만 중지 시키지 않는데다, 기술이 완벽히 걸린 상태였다.] 이후 사쿠라바는 2000년 1월 30일에 개최한 무차별급 그랑프리에 참가해 16강전에서 [[가이 메츠거]]에게 승리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고,[* 이 경기는 메츠거 쪽의 세컨이 연장전을 거부하며 메츠거가 몰수패를 당한 경기였는데, 정작 경기는 메츠거가 우세했다고 본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한동안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00년 5월 1일에 열린 8강전에서는 타카다 노부히코를 이기고 올라온 호이스 그레이시와 결전을 가졌다. 경기 전, 호이스는 무제한 라운드 룰[* 1라운드 15분으로 승부가 날 때까지 싸우는 무제한 라운드는 심판 판정, 닥터 스톱 없이 오로지 KO되거나 선수 기권만 허용되는 선수의 의지로 승부가 결정되는 싸움이었다. 이는 실전지향의 그레이시 주짓때로들이 선호하는 룰이었다.]을 적용해 줄 것을 제의했고, 이에 사쿠라바는 '''"2박 3일이라도 싸우겠습니다."'''라며 수락했다. 사쿠라바는 1시간 30분 가까이 이어진 경기에서 변칙적이고 기상천외한 움직임으로 호이스 괴롭히며 기력이 남아나지 않게 했고, 결국 6라운드 후 하프 타임에 호이스의 세컨이 타월을 던지며 경기는 사쿠라바의 승리로 끝났다.[* 이때부터 사쿠라바에게는 '''세계 최강의 그레이시 일족을 제압'''한 '''그레이시 헌터'''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다.] [[파일:external/cageinspiration.com/kazushi-sakuraba-royce-gracie.jpg|width=500]] 그러나 장장 90분에 걸친 사투로 체력을 소모하여 4강전에서 만난 [[이고르 보브찬친]]과의 경기에서는 시합이 연장에 돌입하자 사쿠라바측의 세컨이 타월을 던지며 패배하고 말았다.[* 이후 보브찬친도 이 시합에서 체력을 소진한 끝에 결국 결승에서 [[마크 콜먼]]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2000년 8월 27일 PRIDE 10에서 [[헨조 그레이시]]를 맞아 2라운드 기무라로 서브미션 승을 거뒀다. 이 경기에서 보여준 기무라가 환상적이었기에 일본의 팬들이 이 경기에서 나온 기무라에 '''사쿠라바 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파일:external/prommanow.com/Sakuraba.jpg|width=500]] 2000년 10월 31일 PRIDE 11에서 쉐논 리치를 상대로 1라운드 힐 훅으로 서브미션 승을 거뒀다. 2000년 12월 23일 PRIDE 12에서는 [[하이안 그레이시]]마저 판정으로 꺾으며 그레이시 헌터의 명성을 세계에 과시했다. 하이안의 어깨 부상 때문에 1라운드만 치르는 특별 룰로 펼쳐졌던 경기였는데, 여기서 하이언은 4점 포지션에서 사쿠라바에게 엉덩이를 맞는 굴욕을 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